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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원조'는?어느 못난이 가장의 성장 일기

9월 1일, 목요일 - '믿음'과 '의심' 중 진짜 원조는?

 

믿음으로 잘 걷고 있다가도 ‘의심’이 마음속에 들어오는 순간,

즉시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곧 걸음이 중지되고, 갈등하게 되고, 흔들리다, 불신의 바다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불쑥 불쑥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믿음’이 혹시 ‘자기 속임수’나 ‘자기최면’의 결과가 아닌지

하는 ‘의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둘 중 어느 한 가지는 분명 진짜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짜일 텐데. 

‘믿음’이 진짜인지 아니면, ‘의심’이 진짜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믿음’과 ‘의심’ 중 어느 것이 ‘진리’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를 확실히 구분 지어주는 기준은 바로 어느 것이 ‘먼저’ 존재하였느냐 하는 ‘존재의 우선성’일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어야만 하며,

따라서 ‘거짓’보다 ‘먼저’ 존재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진품’이 먼저 있고서 ‘짝퉁’이 뒤따라 나오는 이치와도 같다.

 

그렇다면 ‘믿음’과 ‘의심’ 중 어느 것이 ‘원조’일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태어난 인간에게 ‘먼저’ ‘믿음’이 생긴 것이고,

그 ‘믿음’ 뒤에 ‘의심’이 뒤따라 생긴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안했는데,

‘의심’이 먼저 생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심을 해도 먼저 의심할 대상이나 의심할 지식이 있어야 의심도 가능한 일이지. 

의심할 대상이나 지식도 없는데 의심이 생길 수는 없지 않은가?

 

‘의심’은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는 자에게, 혹은 믿고자 하는 자에게 생기는 것이다.

‘믿음’이 아예 없거나 믿어볼 마음이 전혀 없는 자에게는 ‘의심’ 자체가 생겨나는 일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에서만 보더라도

결국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먼저’이고 ‘진리’인 것이다.

‘의심’은 ‘나중’이며,

‘믿음’을 뒤집어엎으려는 세상 영의 악한 '속임수'임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의심’은 마치 ‘미친 개’와도 같다.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대화로, 토론으로, 어떤 확실한 이론 등으로

제압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결코 아니다.

아무리 '완벽한 이론'이나 '논리'를 들이대도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믿음이 흔들려 무너질 때까지

막무가내로 물고 늘어지는 집요하고도 ‘근원적인 악’이다.

따라서 ‘의심’이라는 ‘광견’이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을 보는 순간,

그것이 내 마음을 물어뜯기 전에

내가 먼저 ‘말씀의 불방망이’를 ‘믿음으로’ 힘껏 내리쳐 내쫓아야만 한다(렘23:29).

한 길로 왔다 일곱 길로 도망칠 때까지 말이다.

‘미친 개’에게 ‘신사적인 방법’은 결코 통하지 않는다.

 

‘의심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고,  ‘의심의 끝’이 ‘믿음의 시작’이다.

‘믿음의 시작’만이 곧 ‘의심의 끝’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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