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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어느 못난이 가장의 성장 일기

8월 26일, 금요일 - 사실과 느낌은 별개

 

‘사실’과 ‘느낌’은 별개의 영역이다.

‘사실’이 인지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느낌’은 감정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어떤 ‘사실’이 반드시 항상 어떤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사실’로부터 어떤 ‘느낌’을 얻기를 원한다면,

그 ‘사실’에 대한 깊은 묵상이 필요할 것이다.

매번 ‘사실’로부터 자동적으로 ‘느낌’이 생성되어져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신뢰하며, 그 ‘사실’을 깊이 음미할 때

비로소 ‘느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잘 ‘느껴지지’ 않는 한 가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하나의 ‘사실’이지 그것 자체가 어떤 ‘느낌’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과 ‘느낌’은 별개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창28:16).

 

그래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더 강력하게 느끼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이 사실을

의심 없이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실에 대해 깊이 있는 ‘묵상’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라고 말씀하셨을 때(요14:27)

제자들이 그 순간 바로 마음의 평안을 느꼈던 것 같지는 않다.

또는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여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도(요20:19).

또 승천하시기 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해주셨을 때에도(마28:20).

그 즉시로 제자들이 평안이나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아무리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고 함께 하셔도

그 ‘사실’을 사실로서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깊이 ‘묵상’하지 않는다면,

결코 그 ‘사실’은 어떠한 ‘효력’도, ‘능력’도, ‘유익’도, ‘느낌’도

창조해낼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사7:9, 히4:2).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믿든지 아니 믿든지,

내가 받아들이든지 의심하든지,

내가 확신하든지 불신하든지간에,

나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영원 무궁히 변함없는 ‘사실’과 ‘진리’로서 그렇게 서있을 것이다(사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사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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