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에도 사람들이 없으면 살 수 없어.

참 희한하네. 왜 선택하는 책이 다 이렇게 우울하지.

[인간실격]이야 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읽었고 감정의 방향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터였다.

그래서 암울한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선택한 [비둘기]였다.

평화로울 것 같은 제목에 끌렸는데, 아니었다.

은행 경비원 조나단 노엘이 비둘기 한마리로 인해 일상의 균형이 깨지는 과정은 좀 의아했다.

하지만 작가인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은둔형이란 걸 미리 알고 본다면 그가 내는 숨소리처럼 들려온다. 또 어쩌면 한번쯤 느껴보았을 감정이기도 하다.

저자를 언어의 연금술사라 칭하는 이유를 읽는내내 느꼈다. 내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의 마음을 관찰하는 느낌이 들어 술술 읽혔다.

처음엔 무슨 남자가 비둘기 한마리때문에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고 말하는지, 납득이 어려웠다.

비둘기가 복도에 똥을 싸놓은 거, 바지에 구멍이 생긴 거로 인해 몸을 다 태워버릴 만큼의 분노가 생겨 자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말이 돼.

같은 사건을 두고 제각기 감정의 강도가 다르듯.

내게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에게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던 모양이다.

그가 복도에 들어온 비둘기때문에 화장실도 가지못하고 세면대에서 소변을 보고 비둘기때문에 집을 가출해 호텔로 옮기는 것만 봐서는 그는 인간실격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사람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심각한 상태의 소유자는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을 멀리해야 평화로울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니다. 말이 좋아 그렇지, 그는 은둔형에 가까운 사람같다.

외향적인 사람보다 내성적인 사람이 오히려 내면의 목소리나 감정에 더 자극받는다고 본다.

누구에게나 드러낼 수 없는 두려움이란 게 있다. 나도 그렇거든, 그게 사람이라던가,물건이라던가, 어떤 상황이나 형태일수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백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가닥의 머리카락에도 기겁을 한다. 고요한 것을 두려워하는 이도 있다.

밖으로 감정을 내보내는 사람과는 달리 속으로만 참아내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조나단 같은 내면 세계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아주 잘 표현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의 뛰어난 표현력에 끌려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내 내면은 무엇을 두려워할까?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절망적인 순간 앞에서 가장 두려운 건 죽음이 아니라 혼자만 살아남아 버려질까, 하는 두려움이다. 맞아. 그 어떤 순간에도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

나 그렇게 생각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 아니야.

그러니 세상의 소음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게 비록 소음이라하더라도 말이야.